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사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, 그 감정은 참으로 씁쓸하다. 명백히 상대방의 잘못이 있는데도 내가 사과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, 내 마음속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. '왜 내가 이렇게 해야 하지?'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, 동시에 '혹시 내가 정말 미안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?'란 의문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.
비난의 화살
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먼저 사과하는 순간은 나와 상대방 사이에 정체모를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. 물론, 그 감정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.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, 잘못이 없는 나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낄 때, 그 안에서 오는 고통은 결코 작지 않다. 오히려 내가 불필요하게 책임을 지고 ���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고, 이는 나 자신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.
그렇게 생각해보면, 이 사과는 대개 나를 방어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. 누군가가 나에게 비난을 던질 때, 차라리 내가 먼저 나서서 사과하면서 그 공격의 강도를 줄이는 방법이 서있는 것이 아닐까. 이렇게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감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.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나를 지배하게 되고, 그로 인해 내가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상황으로 몰리곤 한다.
나만의 방식
이쯤 되면 '내 잘못이 아닌데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?'라는 의문이 깊어지기 마련이다. 하지만 그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.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, 의외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. 우리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에서 느끼는 감정의 흔적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.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과를 먼저 하게 되어도, 누군가는 그나마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안도감이 생기곤 한다.
결국,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,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애쓰는 존재일 뿐이다. 나의 마음을 이해해 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. 내 잘못이 아닌데 먼저 사과하고 있을 때, 나만 그런 걸까라는 고민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. 하지만 이 상황이 더욱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,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.